무역 현장 32년, 인문학자가 경제를 읽는 원리

BY 홍익희   2019-09-18
조회 375 3

전대미문의 초유의 경제 환경

현재 인류는 여지 것 접하지 못했던 초유의 경제 환경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저금리, 저투자, 저성장, 저물가’가 그것이다. 이론상 저금리하에서는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는 법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초저금리임에도 투자와 소비가 일어나지 않다보니 성장이 둔화되고 저물가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현상으로 이제는 거의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금융인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뉴 노멀’(New Normal)이라 부른다. 새로운 경제적 기준이란 뜻이다.

이 단어는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률, 고위험’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투자 기준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 수익률임에도 고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투자 위험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투자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뉴 노멀이란 용어 대신 ‘신창타이’(新常態)라고 부른다. 새로운 정상상태라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클리셰(cliché)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클리셰는 진부한 표현이나 상투적 말을 의미 하는 프랑스어인데 이제는 표준 단계를 넘어 진부한 이론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다. 최근 들어 저성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는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번이나 하향 수정 발표했다. IMF는 2018년 7월 ‘2019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로 제시했으나, 이후 10월과 올해 1월, 4월, 7월까지 총 네 차례 새로 전망을 낼 때마다 0.2%, 0.2%, 0.2%, 0.1%포인트씩 하향조정했다. 그만큼 세계경제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도 이러한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활력이 심각하게 둔화되고 있다.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잠정치)은 1.0%에 그쳤다. 장기불황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올 들어 7개월 연속 0%대 상승률에 그치다 지난 8월에는 드디어 마이너스로 진입했다. 물가가 0.038% 하락한 것이다. 이른바 디플레이션이다. 이렇게 저성장과 더불어 저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이제는 경기를 극단적으로 얼어붙게 만든다는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본격적으로 덮쳐오고 있는 것이다.


사상최대 유동성, 사상최대 재정적자, 사상최대 부채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사상최대’라는 무기들을 동원했다. ‘사상최대 유동성, 사상최대 재정적자, 사상최대 부채’로 밀어붙이고 있다.

양적완화는 2008년 11월 미 연준(Fed)이 경기회복을 위해 꺼내든 비장의 특별카드로 교과서에 없는 ‘무제한 달러 살포’ 비기였다.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0%까지 내렸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자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등을 사들여 시중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전대미문의 미국의 양적완화는 3차까지 이어지며 6년간 약 4조 달러가 전 세계에 풀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위기로 11%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이 6%까지 떨어지면 양적완화를 중단하겠다고 했고, 실제 2014년 10월 양적완화를 중단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통화정책 뿐 아니라 재정정책도 곁들여 사상최대의 재정적자를 펼치며 수요를 견인했다. 이 결과는 당연히 사상최대의 부채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9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놀랍게도 3.7%이다. 돈을 풀고 재정적자를 늘려 미국 경제를 살린 것이다.

이러한 ‘사상최대 유동성, 사상최대 재정적자, 사상최대 부채’는 미국만의 정책이 아니라 중국, EU, 일본 등 G7도 마찬가지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다.

환율전쟁의 서곡, 양적완화

미국이 제로금리를 운영하며 양적완화(QE)로 유동성을 늘린다는 것은 사실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의 다름 아니었다. 달러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국들을 힘들게 하는 이른바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beggar-thy-neighbor) 정책이었다. 그러자 일본과 EU 그리고 중국이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앞 다투어 양적완화에 뛰어들었다.

2013년 이후 일본의 4년간 불어난 통화량은 미국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단행했던 1,2차 양적완화를 능가하는 규모로 300조엔 이상이 늘어났다. EU도 일본에 못지않았다. EU 중앙은행 ECB는 2015년 3월부터 2조 6천억 유로 규모의 자산을 매입했다. 영국 파운드화도 이에 가세했다. 중국은 양적완화 규모를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을 능가하는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도 경기를 부흥시키지 못하자 일본과 EU는 양적완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연준은 2017년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줄이기 시작해 2015년 4조5천억 달러에 이른 보유자산 가운데 3천700억 달러 정도의 국채를 매도해왔었는데, 지난 8월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어 금리를 인하하면서 그간 시행해오던 양적완화 긴축작업을 중단했다. 향후의 추가 금리인하와 더불어 양적완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겠다고 시행했던 ‘특단의 조치’가 이제는 일반화되어 ‘뉴 노멀’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의 유동성은 사상최대에 달했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팽창사회에서 수축사회로

현대 사회는 저성장과 저투자, 저물가 곧 디플레이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전 대우증권 대표였던 홍성국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단언한다. 그간 파이가 커졌던 고성장 팽창사회에서 이제는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저성장 수축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포지티브섬(positive sum) 사회가 제로 섬(zero sum) 사회가 되어 서로 파이를 뺏어먹어야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사상최대 부채로 인한 소비 감소와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로 인한 공급과잉 등 세상은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많은 유익도 주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한 번도 도래한 적 없는 낯선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특히 인구 감소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합계출산율 1명 이하라는 수치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처음이다. 1971년 우리나라의 출생아동수가 100만 명이 넘었는데 이제는 32만 명대로 떨어져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50년도 채 안되어 1/3 이하로 감소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빨리 줄어드는 나라가 되었다. 당장 올해부터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면서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향후 유엔이 예측하는 최장수국가도 우리나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최장수 예측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나라 노인의 삶의 질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노인 인구의 절반이 인간의 마지막 인격조차 보호하기 힘든 극빈층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여성인력을 산업화하여 경제부흥을 이루었듯이 앞으로는 노인인구를 산업화하여야 이 절박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저출산·고령화와 구조적 장기불황이 겹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어려움과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당장 많은 학교들과 학원들이 사라질 것이고, 종국에는 인구절벽이 부동산 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다. 노동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생산이 줄어들고 세수 또한 감소하여 국가의 재정지출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또한 청장년층이 줄어들면서 나라의 활력이 떨어지고 내수시장의 수축 또한 불가피하다. 이렇게 국력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적 분야에서 엄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금융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

[사진 출처 : 중앙일보]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금과 달러의 고리가 떨어져 나간 이후 미국은 근원 인플레이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달러를 무제한으로 발행해 왔다. 이로 인해 노동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GDP보다 금융자산으로 부를 늘리는 자산소득이 서너 배 앞서는 금융자본주의가 세계경제와 부를 주도해 왔다.

1970년만 해도 세계 금융자산의 규모는 세계 총생산 규모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년 마다 2배씩 증가하여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금융자산의 규모가 세계 총생산 규모의 거의 4배에 육박했다. 심지어 헤지펀드가 주로 운영했던 파생상품 중 CDS(신용부도스왑) 시가총액은 2007년 말에 62조 달러에 달해 당시 세계 총생산액 54조 달러 보다도 커졌다. 인간의 속성이 투기로 치달아 단일 파생상품의 규모가 세계 총생산액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로 인해 터진 게 200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은 약효가 떨어진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유동성이 폭증하자 투기 거래가 급등했다. 2017년 연말 기준 세계 파생상품 시가총액은 무려 544조 달러에 달해 세계 총생산액 규모 78조 달러, 세계 주식시장 규모 81조 달러, 세계 채권시장 규모 215조 달러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인간의 탐욕 특히 월가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이러한 금융자산과 유동성의 획기적 증대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상승을 불러와 세계적인 저성장, 저소득 국면임에도 자산가들의 소득과 부를 급격히 늘려주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이로 인한 경제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심화, 부의 편중’ 등이 그것이다. 이제는 상위 1%의 부가 세계 전체 부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불평등 심화와 부의 편중은 결국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져 자본주의 존속을 위험하게 할 뿐 아니라 당장 사회 전체의 소비 감소로 이어져 세계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양극화 극에 달해

이러한 양극화 문제는 경제적 현상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정치, 외교 등 전 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기득권자와 신규 진입 세력, 세대 간 갈등, 보수와 진보, 자유경제주의와 사회주의 등 계층 간 갈등과 각종 이데올로기 문제로 갈라져 싸우는 게 일반화되었다.

국제관계도 보편적, 합리적 질서가 아닌 자국 중심주의가 판치고 있다. 자기 살기 바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정치가들의 독선과 아집이 세계를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때 튀어 나온 것이 미중 간 무역 전쟁이다.

이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가측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무역전쟁은 본격적인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고 전쟁 등 심각한 패권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제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경제와 국제관계를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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