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읽는 원리(1) _ 금리는 왜 계속 낮아지는 것일까?

BY 홍익희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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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경우, ‘경제를 읽는 원리’를 크게 3 부분으로 나누어 봅니다. ‘화폐경제, 실물경제, 파생상품’이 그것입니다. 이 세 분야의 흐름을 알 수 있으면 어느 정도 경제를 읽을 수 있습니다. ‘파생상품’은 전문가의 영역이자 금융위기 등 위험을 감지하기 위한 분야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단 제외하겠습니다.

하지만 화폐경제와 실물경제조차 그 흐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를 지극히 단순화시켜보면, 화폐경제는 ‘돈 가격’으로, 그리고 실물경제는 ‘석유 가격’으로 대체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돈 가격과 석유 가격이 의미하는 ‘경제를 읽는 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돈 가격’은 시장에서 ‘금리’와 ‘환율’로 표시됩니다. 시장에 돈이 귀해지면 ‘돈의 가치’가 올라가 이자율 곧 금리가 올라갑니다. 반대로 시장에 돈이 흔해지면 금리는 내려갑니다. 우리는 금리를 통해 돈의 흐름과 경기의 부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국가 간 통화가 거래되는 외환시장에서 각국 통화의 교환가치는 환율로 표시됩니다. 환율을 통해 우리는 그 나라의 총체적인 경제사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번 편은 ‘돈 가격’ 중의 하나인 금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해보았습니다.

금리는 왜 계속 낮아지는 것일까?

[미국 기준금리와 시중 장기금리(10년물 국채 이자율) 추이]
시중금리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면서 많은 변동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1980년대 이후 시중금리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이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통화의 역사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브래튼우즈 체제

1914년 1차 대전을 전후해 세계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 곧 세계의 기축통화가 파운드에서 달러로 옮겨온 것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중인 1944년 브래튼우즈 회의에서 영국 대표인 케인즈의 세계화폐(방코르) 사용 제안을 힘으로 일축시키고, 자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그 외에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시키되 1%의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했다.

그 결과, 2차 대전 이후 세계 외화자산 결제는 주로 달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브래튼우즈 체제의 금환본위제임에도 미국은 팽창정책을 계속하며 베트남 전쟁 등 군비 충당을 위해 암암리에 금과 관계없는 달러발행을 남발했다. 당연히 달러의 실질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세계는 미국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달러에만 모든 결제를 맡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64년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에서 달러의 독점적 위상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세계화폐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다. 그러자 드골은 세계화폐 개념은 새로운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통용되던 금이 바로 세계화폐라며 국제체제의 평등성 회복을 위해 금본위제로 복귀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미국의 금과 바꿀 의향을 밝혔다.

이러한 협박은 미국의 공식입장을 변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달러의 위상이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입장을 바꿔 드골의 특별인출권 창출에 동의했다. 결국 IMF가 케인즈의 세계화폐 아이디어를 차용해 1969년 새로운 국제 준비자산을 만든 것이 특별인출권이다. 특별인출권은 IMF 회원국의 국제수지가 악화되었을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해 갈 수 있는 권리이다. 쉽게 말해 특별인출권은 IMF에서 사용하는 가상의 준비통화로 달러를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세계화폐이다.

달러의 구조적 한계, 트리핀 딜레마

무릇 인플레이션의 근본원인은 재정적자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은 재정적자가 일어나야만 달러가 발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국채를 발행해 연준에 주어야 달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경상수지적자가 되어야 달러가 해외로 공급된다.

1950년대 수년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또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1960년에 이미 방만하게 공급된 달러는 외환시장에서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렸다. 그러자 미국 경제학자이자 예일대 교수 로버트 트리핀은 미국의 방만한 재정운용정책이 지속될 경우 금태환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진 1960년 트리핀은 미 의회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했다.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아 국제 유동성 공급이 중단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상태가 지속돼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가치가 떨어져 준비자산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고정환율제도도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달러화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태생적 모순을 가리켜 ‘트리핀 딜레마’라고 한다.

세계가 달러를 의심하다

브레튼 우즈 체제 초기인 1947년까지만 해도 미국정부는 전 세계 금의 70% 이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서독과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무역 증대로 세계 무역에서 미국의 위상은 점점 축소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통화팽창 등으로 달러 가치는 1960년대 들어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1966년에 이르러 미국의 금 보유는 전 세계 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미국 이외 나라들의 중앙은행들이 140억 달러 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미국의 금 보유는 단지 132억 달러 만큼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1971년 들어 달러 통화량은 10%나 늘어났다. 이에 불안을 느낀 서독이 그해 5월 브레튼 우즈 체제를 탈퇴했다. 그러자 달러 가치는 마르크 대비 7.5% 하락했다. 다른 나라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제 각국은 달러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보유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 원했다. 스위스가 가장 먼저 7월에 5천만 달러를 미국의 금으로 태환해 갔다. 이어 프랑스도 1억 9100만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갔다. 그러면서 1억5천만 달러를 더 태환할 계획이라 발표했다. 드골은 미국에 해군 함대를 보내 프랑스로 금 운반하는 걸 대내외적으로 과시까지 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어 스페인도 6천만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갔다. 이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달러어치의 금을 교환해 간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금 보유고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달러 가치가 유럽의 통화들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자 8월에 스위스도 브레튼 우즈 체제를 떠났다.

1971년 8월 9일, 영국의 경제대표가 재무부에 직접 와서 자그마치 30억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정부는 잘못하면 국가 부도사태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비상 국면에 직면한 것이다. 그 다음 주 13일 금요일, 닉슨 대통령은 돌연 행정부 주요 경제정책 담당자 16명에게 헬리콥터를 타고 자신과 함께 캠프데이비드 군사기지로 가자고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차단함으로써 이 모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금 고갈에 직면한 미국이 자신만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케인즈가 우려했던 것이 전후 세계경제 흐름 속에서 차례차례 현실로 드러났다. 1965년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을 승계한 린든 존슨은 베트남 전쟁에 확대 개입하면서 경제는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당시의 금환본위제를 위배하는 비도덕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에 금 보유와 상관없이 달러를 더 발행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는 브래튼 우즈 체제 참가국들을 속이는 행위였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화폐발행량을 늘리자 물가상승률은 6%까지 치솟았으며 1970년대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를 넘나들었다.

세계를 우롱한 닉슨의 배신

베트남 전쟁 등 패권정책으로 미국 경제는 침체로 빠져들었고 보유한 금은 점차 줄어들어갔다. 그 와중에 영국마저 금태환 움직임을 보이자 결국 케인즈의 우려대로, 미국은 금 고갈로 인해 1971년 8월15일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이른바 ‘닉슨쇼크’를 단행해 브래튼우즈 체제를 스스로 파기하는 비도덕적 배신을 감행했다. [닉슨 대통령]
그는 투기꾼들에 의해 달러가 공격받고 있다고 하면서 일시적으로 달러의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발표내용도 지극히 부정직했다. 이렇게 미국이 하루아침에 금과 달러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그간 금 교환권이라고 믿어온 달러와 또 그 달러에 연동되어 있던 전 세계 화폐를 모두 종잇조각으로 전락시킨 엄청난 사건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 뒤 세계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브래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나서도 3~4년 동안 세계는 효과적인 국제 통화제도를 찾지 못했다.

닉슨 쇼크와 동시에 미국정부는 모든 수입품의 관세를 10% 올리는 보호무역을 단행하고, 국내적으로는 90일간 물가와 임금을 동결하고, 대외적으로는 달러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여 목표 금값을 온스당 35달러에서 38달러로 변경했다. 전형적인 ‘인근궁핍화전략’으로 다른 나라들이야 어떻게 되든 미국 혼자만 살아남겠다는 것이었다. 1972년에는 달러 가치를 다시 금 1온스당 42.22달러로 절하했다. 사실 달러의 인근궁핍화전략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달러의 가치를 금 1온스 당 20.67달러에서 하루아침에 35달러로 자그마치 69%나 일시에 평가 절하한 사례가 있었다. 그때도 다른 나라들 특히 수출 경쟁국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금본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포드가 대통령을 하던 1974년이었다. 이로써 지난 5천년 이상 금은본위제로 대표되던 실물화폐(commodity money)는 역사에서 퇴장하고 미국이 공여하는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신용화폐(fiat money)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인류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달러, 기사회생의 묘수를 찾아내다

1970년대 달러 가치가 이렇게 떨어지자 이번에는 그 영향이 산유국들에 미쳐 국제 원유가격을 대폭 끌어올리는 빌미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아랍권의 패배로 끝난 이후, OPEC 산유국들은 석유의 무기화를 외치던 참 이었다. 산유국들은 석유수출을 줄이는 동시에 원유가격을 인상했다. 1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가격은 3개월 만에 11달러로 뛰어올랐다. 이는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14.5달러에서 55달러로 폭등한 것이었다. 당장 세계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파동으로 1974년 주요 선진국들은 두 자릿수 물가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의 천재 외교관 키신저 국무장관은 놀라운 외교성과를 연속적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체결하고, 죽의 장막 중국의 문을 열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1975년에는 OPEC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의 파이살 왕과 비밀협상에 성공했다. 곧 미국이 사우디 왕권을 보호해주는 대신 세계최대 유통 상품인 석유의 거래를 달러로만 하도록 하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그 뒤 석유의 달러거래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덕분에 달러가 계속 기축통화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의 유혹

금과의 고리가 끊어진 달러는 이후 근원 인플레이션 한도 내에서 무제한 발행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게다가 다른 나라들도 달러의 평가절하를 견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화폐발행량을 늘려 나갔다. 그 결과 금본위제 하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유통에 비해 화폐의 유통량이 적은 게 문제였는데 이제는 너무 많은 게 문제가 되었다. 세계 총생산액 증가율이 연 3~4%임에도 금융자산 증가속도는 그 3~5배에 달하는 15% 내외로 늘어났다. 너무 과도한 증가율이었다. 금환본위제였던 1970년에는 세계총생산액(GDP) 대비 세계 금융자산의 비중이 50%에 불과했는데 그 후 1980년에 109%로 늘어났다. 불과 10년 사이에 통화량을 토대로 하는 세계의 금융자산이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달러는 구조상 미국정부의 재정적자와 연계되어 발행되게 되어있어 미국은 재정적자 곧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재정적자 문제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 모든 선진국들의 공통된 문제이다. 이로 인해 미래 후손들은 새로운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이다.

국가부채가 늘면 이자와 원금 감당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나라가 자국화폐의 가치절하를 위해 인플레이션 증대와 인위적인 평가절하로 짐을 덜려고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게다가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근원 인플레이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끊임없이 화폐발행량을 늘리는 인플레이션의 유혹에 빠져 시중 유동성이 계속하여 늘어났다.

자본집적도의 증가로 시중금리는 계속 내려가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었다. 경제를 시장의 효율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 이후 소득불평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은 그것을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돈이 돈을 불리는 ‘금융자본주의’의 속성이었다. 곧 땀 흘려 일해야 버는 근로소득(세계총생산) 대비 돈이 돈을 불려주는 불로소득(금융자산소득)이 서너 배 더 빨리 성장한 것이다. 세계총생산액(GDP) 대비 세계 금융자산의 비중 곧 자본집적도가 1980년에 109%였던 것이 1990년에 263%로 늘어났다. 실물경제보다 금융자산의 증가속도가 날이 갈수록 더 가팔라진 것이다.

그 뒤 미국은 다른 나라에도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밀어 붙였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라 하여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와 금융시스템의 대외확산전략을 말한다. 세계화와 자유화라는 용어가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 미국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강제로 남의 나라 외환시장 빗장을 열어 제치며 자본수출에 광분했다. 그 뒤 세계 각국의 외국인투자 자본의 2/3는 미국자본으로 채워졌다. 이 통에 우리도 IMF 사태를 당했다. 이때 우리 주요 은행들의 주식 60% 이상이 그들 손으로 넘어갔다. 은행 3개는 아예 통째로 넘어갔다. 대기업 주식도 절반가량 외국인에게 넘어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세계에 금융자본이 넘치다보니 자본집적도는 2000년 310%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상품과 서비스의 증가량에 비해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시중금리는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초에 15%가 넘었던 미국의 시중금리가 1990년에는 8%대로 떨어졌고 2000년대에는 5%대로 낮아졌다. 세계금리는 자본조달 창구인 미국의 시중금리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함께 낮아졌다.

또 금융자산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의미는 화폐의 본원적기능인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수요 증가보다는 투기적 수요가 많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일 평균 외환거래액이 2004년 3조 달러가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의 무역거래와 장기투자에 필요한 외환은 하루 300억 달러로 1%에 불과했다.

그 뒤 파생상품 등 투기거래의 급증으로 세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2008년 초에 발표된 맥킨지 보고서를 보면, 2006년도 전 세계 금융자산 총액은 167조 달러에 이르러 전년대비 17.6%나 늘어나 지나치게 금융시장이 팽창하고 있었다. 자본집적도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355%로 증가했다. 또 신자유주의 이후 등장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자본주의는 부의 분배가 노동자에게서 주주 등 금융자본가에게로 쏠리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불평등 심화가 단순한 최상위 집단으로의 소득집중 뿐 아니라 중산층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1980년대 레이건 정권 때부터 시행한 부자감세 정책은 심각한 소득불평등을 불러와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거의 50%를 독식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사회의 소비수요가 팍 줄어든다는 게 큰 문제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사실 버는 대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소득과 부가 상위 극소수계층으로 몰리면 그들은 소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산성의 향상으로 상품은 넘쳐나는데 수요 부족으로 소비가 크게 줄어들어 투자 역시 급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을 대폭 늘려 2013년 일일 평균 외환거래액은 5조 3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 돈을 빌리려는 사람보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금리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제 시중금리는 2%대로 낮아졌다. 이러한 유동성 살포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다음 위기를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2편에 계속...